어머님의 220mm 조그마한 발이 짓물기 시작하다!

우리 어머님은 키가 자꾸 줄어들고 계신다.
82세..

우리 어머님의 발은 220mm.

신발을 선물할 때면
여간 고생스럽지 않다.
적당한 크기의 신발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허리수술을 하셨다. 허리가 부러지셨다든가 금이 갔다든가!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어머님의 허리 일부를
쉽게 말해
콘크리트 바르듯
회 반죽으로 바르듯
발라 버려서

허리를 굽히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어머님의 집에 가면
발을 닦아 드린다.

어머님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는 밀착되어 있다.

그 밀착된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짓물고 있다,,
발을 닦아 드릴 때마다
연신 짓물은 피부를 걷어 내 드린다.

아프실께다...

나도 허리를 다치면
저렇게, 발가락 사이가 짓물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
아프다는 것.
얼마나 슬픈 일인가?

by pricing | 2013/10/03 07:47 | 아버님 어머님과 행복인생여행 | 트랙백 | 덧글(1)

제라르 드 파르디외 & 피아노, 그리고 방시혁, 총 맞은 것처럼

제라르드 파르디외가 주연으로 나온 '그린 카드'는

내 20대시절에 즐겁게 보았던 영화 중의 하나이다.

육중한 몸매에
투박한 턱선을 가진
파르디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갑자기 피아노가 외소해 보인다.

그는 거칠게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부드럽게 시'를 읊기 시작한다.

불어로...

그 장면에 얼마나 내 마음이 울렁이었던가!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이 얼마나 설레였던가?

지인 중에 작곡가 방시혁씨가 있다.
집에 피아노가 있단다.

그 소리를 듣자 마자
난 '그린 카드'의 파르디외가 생각났다.

그 피아노 치던 장면이 생각났다.

방식혁 작곡가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아주 달변의 말 솜씨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득해 가는 사람이다.

작곡가라고 알기 전에는
외모만 보면
'직업이 뭘까?'를 가름할 수 없는
사람이
방시혁 작곡가 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총 맞은 것 처럼..
흘러 넘쳐,,'

아주 시각적이고 호소력있는 작사와 작곡을 창작해 낸다.

'총맞은 것처럼'의 곡에서

- 웃고
- 흘러 넘치고
- 구멍이 생기고
-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 뒤 따라 가고

아주 시각적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의 언어는 온통 시각적이다라고 유홍준 교수가 말씀하셨는데
'총 맞은 것처럼'을 듣는 몇 분 동안에
그만큼 시각적이다.
눈에 보이고...또 보인다.

아주 호소력이 있다.
- 아, 소리치고
- 허탈하게 웃다가
- 어떻게 헤어지냐고 울부짓다가
- 치료해 달라고 흥분한다.

제라르드 파르디외가
그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런 그림과 울부짓음을

그 피아노 앞에서
덩치 큰 작곡가가
만들어 내는 상상을 한다.

생각만 해도 예쁜 그림이다.
즐겁다!!!


by pricing | 2013/10/03 07:40 | 행복한여행하기 | 트랙백 | 덧글(0)

모나리자의 눈썹을 가지신 우리 엄마의 불법 문신

루브르 박물관에 몇 번을 갔어도
모나리자의 얼굴을 가까이 본 적이 없다.

삼엄한 경비와
많은 관람객으로 인해
가까이 관람할 시간과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사진으로 접하는 모나리자를 볼 때마다
'눈썹이 없네!'
'우리 엄마도 없는데.!'
'나도 없는데!'
하고 속으로 외친다.

우리 어머님이 10여년 전에 눈썹에 문신을 살짝 하고 집에 오셨다.

와 하고
웃어 버렸다.

나도 눈썹이 없어서
안경을 항상 두껍고 진한 것을 쓰는
컴플렉스를 갖고 있듯이

우리 어머님도 눈썹이 흐리고
숱이 없는
자신의 그것이 싫으셨단다.


'잘 하셨어요!'

그래도 우리 어머님은 약간 쑥스러운 듯 살짝만 하고 오셨다.
우리 경상남도 도지사인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킨
도지사처럼
우리 어머님이 너무 진하게 문신을 하지 않으셔서 좋다..

내가 눈썹이야기만 하면
아주 질색을 하신다.

엄마!
엄마 눈썹은 모나리자 닮았어요.
사랑해요

by pricing | 2013/08/27 06:45 | 아버님 어머님과 행복인생여행 | 트랙백 | 덧글(1)

함양 상림의 연꽃밭

10여년 전에 함양 상림을 처음 보았다.

최치원이 이 곳에 관리로 부임하여 만들었다는 상림이니까
그 세월이 1000년이 넘었다.

나의 주관적인 상림 최고의 모습은 상림 안에 난 산책로를 걷는 것이다.
하지만, 상림에서 나와
함양군이 조성한 연꽃 밭과 상림 사이 사잇길을 걷는 한가로움도 너무 좋다.

작년 8월
아내와 키키(15세 강아지)를 데리고 갔었다.
어제 아내와 장모님을 모시고,
상림을 걷고
연꽃밭 사이를 즐겼다.



혼자 거닐던 추억을 걷고
큰 누님의 화통한 웃음을 생각하면 걸었다.

내 키만한 연은 항상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올해 연은 유난히
사이길 쪽을 향하지 않고
내가 쳐다보는 반대방향을 향한 잎이 많아서
연잎의 뒷통수만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내가 싫어졌나 부다

by pricing | 2013/08/27 06:35 | 행복한여행하기 | 트랙백 | 덧글(0)

어머님의 조막손과 주민등록, 손톱 발톱깍기. 어머님의 예쁜 손이 슬프다

70년대 초의 어느 해인가!

아버님과 어머님이 밖에서 약속을 하셨다.
난 엄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고
이내 아버님을 만났다.

읍사무소였는지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날, 엄마는 지문을 찍어야 하셨다.

볼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지문인식.

그런데, 그 지문인식을 위해
손가락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시면서,
자꾸 다른 손으로 지문을 찍는 손의 손가락을 가리셨다.

우리 어머님의 손은
손가락이 조막손이다.


손톱은 네모났고
손가락의 끝은 뭉툭하다. (배우 한석규 씨의 손을 모아 놓은 상태이다_)

너무나 못생긴 손을 가지신 것이다.
남이 자신의 손을 보는 것이 너무나 싫으신 것이다.
창피하신 것이다.

그 후, 나는 엄마 손만을 20여년 동안 보면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
다른 여성의 손을 보고 나서는
길쭉길쭉 한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잔뜩이나, 이 조막손의 손톱을 이로 심심하시면 뜯기 때문에
손톱도 불규칙하고, 더 안 이뻐 지셨다.

내 나이 20살 넘어서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난, 어머님의 손톱과 발톱을 깍아 드린다.

고향집에 가는 날이면
어머님은 가끔 손톱 발톱을 깍아 주실 것을 요구하셨고,
난 국민학교 중학교 다니면서도 증조할머니의 손발톱을 깍아드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달려들어서 손톱을 깍아드린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져서
으레이 집에 가면, 손발톱을 깍아드린다.

사실 깍아드릴 손톱도 없다.
엄마가 이미 이로 다 뜯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손발톱도 못 깍는다고
아버님이 어머님을 쿠사리를 하실 때면

'난, 막내아들이 깍아주는 게 좋아'하시면서 웃으신다.

심지어는, 내 아내에게 말씀하신다.

'너도 손톱깍아 달라고 해라'

아내가 마구 웃어댄다.

요즘, 83세의 우리 어머님 손발톱을 깍을 때면,
예전과 다르다.

손톱을 이로 물어 뜯을 기운이 없으시고
살림하시는 양도 없어지시거나 줄었기 때문에
손톱이 온전히 남아있다/

난, 슬프게도 예쁘게 자란 손톱을 자른다.  손톱도 두꺼워지시고, 둔탁하다.

예전처럼 우리 어머님이 기운이 있으셨으면
물어 뜯은 손톱을 다듬기만 하면 되는데....

어머님의 예뻐지신 손이 슬프다.

by pricing | 2013/08/24 11:03 | 아버님 어머님과 행복인생여행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